노벨문학상에 눈이 먼 한국의 시인을
후배 문인? 최영미가 시로 응징했다.
원로 시인 성폭력 고발 내용
당사자는 “잘못된 행동 뉘우쳐”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에스엔에스상에서 다시 회자되면서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31093.html#csidxfefda48f5bd67d49b5c7faf092e80c1 
그 시를 읽으며 든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들에게 여자란 사고파는 물건이었다.
키우다 힘들면 유곽에 팔고
판돈으로 탁배기 한잔 받아 먹으며
꼴란 양심의 가책으로 신세 한탄을 자아내던
세상을 저주한 그런 민초였다.
그들에게 봄볕이 쥐구멍 만하게 들어왔을때
왕이 된 듯 호기를 부리기 시작하고
육식 동물로 바뀌어 주물럭 거리던 시대가 있었다.
아주 오랜시간....
그들이 만들어 낸 문학이란게
심청이를 공양미 300석에 판 심봉사 같이
세상을 보는 눈이 그렇게 일천 했으니
그 이야기를 동화처럼
그 이야기를 민화처럼
그 이야기를 구전 가요로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퍼트렸다.
그것을 부르기도 민망 스러운 효라는 이름으로....
그런 시대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작금의 위안부 소녀상도
그들과 그들 주변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런 스토리가
전부가 아님을 알고도
심봉사 처럼 보이지 않는듯
남탓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이야기 하면 사법의 철퇴를 맞는다.
언론 이라는 인민 재판이 열리고...
바로 보아야 그 사안에 맞는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랬으면 좋겠다" 는 희망을 역사인듯 만들어 버린다.
이제도 늦지 않았으니
me too
부끄러움으로 반성하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자
모든 인간이 같은 인간임을.....